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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지지 않은 조국의 검성 척준경

by 내맘rz 2023.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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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척준경 나무위키

 
 
 
 

척준경 검술은?

 
척준경은 고려시대의 무신으로, 뛰어난 검술로 유명합니다.
 
그는 한 손으로 검을 들고 여진족 기병대를 혼자서 물리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척준경의 검술은 매우 강력하고 신속했습니다. 그는 적의 공격을 막고 반격하는 데 매우 능숙했습니다. 또한, 척준경은 검술뿐만 아니라 창술, 활술 등 다양한 무술에도 능했습니다.
 
 
 
 

 

척준경의 전투?

 
 

  • 여진족 정벌: 1104년(숙종 9), 윤관, 오연총 등과 함께 여진족을 몰아내고 동북 9성을 쌓는 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척준경은 혼자 여진족 기병대를 향해 돌진해 1명을 베고 포로인 준민, 덕린과 함께 활로 각각 여진족 1명씩 쏘아 죽이자 여진족 군사들이 놀라 동요하였습니다. 척준경의 용맹과 지략으로 고려군은 여진족을 크게 무찌르고 동북 9성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 이자겸의 난 진압: 1126년(인종 2), 이자겸이 무신정권을 세우고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척준경은 이자겸의 난을 진압하고 고려를 구했습니다. 척준경은 이자겸의 군대를 포위하고 공격하여 이자겸을 사로잡고 처형했습니다. 척준경의 활약으로 고려는 무신정권에서 벗어나 왕권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척준경의 평가는?

 
 
고려를 넘어 한국사 전체에서도 손에 꼽히는 검성. 하급 남반 관리 출신으로 숙종 시대 무관이 됐고 예종 시기 여진전투에 참여해 큰 공을 세웠다. 고려 초기 대표하는 무인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여진전투 내내 독보적인 전공을 쌓았다.

군대를 통솔할 때도 혁혁한 성과를 보여줬는데, 단신으로 보여준 전투력은 독보적인 수준이다. 혼자서 공성전의 판세를 뒤엎고, 전멸 직전의 상황에서 10명 남짓한 결사대로 지원군이 올 때까지 시간을 벌었으며, 성이 포위당한 상황에서 결사대와 함께 무장한 병사 십여 명을 거뜬히 베어 넘겨 포위진을 와해, 밤을 틈타 포위를 뚫고 국경까지 내달려 구원군을 편성해 왔다는 믿기 힘든 공적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건 동네 주먹싸움과는 차원이 다른 오롯이 전쟁에서 세운 공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얼마나 죽였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영향을 끼쳤느냐이며 군사들의 사기는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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